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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단편 포켓몬스터D/P 단편 [키쿠노]

시랑 2008.09.17 04:32 조회 수 : 77

"언니!"
키쿠노는 자신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화낸 적이 있었나?
"그 포켓몬 바보 좀 내버려 둘 수 없어?"
키쿠코는 입만으로 살짝 웃었다.
"응. 내버려 둘 수 없어."
키쿠노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런 자신에게 두려움까지 느끼면서, 키쿠노는 앞으로 나섰다.
키쿠노가 키쿠코의 손을 강하게 낚아채었다.
키쿠코는 아픈 기색을 내거나 키쿠노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씁쓸히 웃었다.
키쿠노는 그런 언니를 보며 더욱 열이 받는 것을 느꼈다.
"절대 못 가. 내가 보낼 것 같아? 언니를 쓰러뜨려서라도 막을 거야!"
키쿠노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키쿠노는 몬스터볼을 꺼내들 수 없었다.
키쿠노는 주머니에서 빠지지 않는 손에 놀라 당황했다.
"언니!"
키쿠코는 이번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키쿠노는 갑자기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럽게 식은 머리에 현기증이 났다.
키쿠노는 자신이 화낸 것에도 놀랐지만 언니가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경악했다.
키쿠코는 지금까지 키쿠노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젠장, 모든 게 그 포켓몬 바보 때문이야!
키쿠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키쿠코의 손은 자연히 빠져나왔다.
키쿠노는 몸을 살짝 돌렸다.
"그럼, 갈게."
"언니!"
몸이 불쾌하게 둔했다.
혀만이 키쿠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
뒤돌아선 키쿠코의 등에 대고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키쿠노는 분노로 머리가 뜨거울 때와 차갑게 식은 지금 중 어느 상태가 더 도움이 될까 생각했다.
아아, 이런 때에 잡생각이라니.
혼란스럽다.
"가지 마."
결국 키쿠노는 그 말 밖엔 할 수 없었다.
키쿠코는 아까의 우울한 표정을 다시 보여줬다.
단, 이번에는 살짝 웃고 있었다.
"안녕."
키쿠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키쿠노의 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누르고 있던 힘이 사라졌는데 키쿠노는 털썩 무너지고 말았다.
키쿠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팔로는 땅바닥을 치며, 키쿠노는 오열했다.
머리가 다시 뜨거워졌다.
"아아아아……!"
포켓몬 바보.
그 녀석 때문이다.
언니의 주특기인 고스트 포켓몬을 상대로 노말 타입 기술이나 날리는 상식을 벗어난 남자.
그러면서도 언니를 항상 고꾸라뜨리는 남자.
지금껏 누구를 원망조차 해 본 적 없는 키쿠노를 다른 누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분노로 휩싸이게 한 남자.
그런데도 증오할 수 없는 그 남자.
키쿠노는 언니가 사랑하는 남자를 증오할 수 없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키쿠노는 그 남자가 죽도록 미웠다.
언니를 그렇게 홀려놓고 나몰라라 하고는!
키쿠노는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머리가 찢어졌다.
하지만 키쿠노는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키쿠노가 아픈 곳은 이마나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었다.


몇십 년 후, 키쿠노는 초라하게 버려진 한 여성을 보았다.
젊었을 적의 미모는 온데간데 없었다.
온갖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고, 괴로움에 마음이 병들었다.
외로움이 숨이 막힐 지경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다만 살아온 여자 앞에서 키쿠노는 눈물을 흘렸다.
키쿠노는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누구 때문에 이토록 원망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바보를 선택하고도 버림받고 폐인이 된 언니?
그녀는 언니를 원망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버린 언니를 내동댕이친 그 바보?
원망하려면 원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원망만으로 사람을 죽일 정도였는 걸.
하지만 그녀는 언니를 버린 바보를 원망할 수 없었다.
폐인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지만 키쿠코는 아직도 그 바보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
사랑이 뭐지?
"우아아아!"
키쿠노는 몬스터볼을 무작정 던졌다.
지난 몇십 년간 그녀와 함께 울었던 하마돈, 딱구리, 메깅등이 튀어나왔지만 키쿠노는 그 포켓몬들에게 애정을 느낄 수 없었다.
언니를 잊도록 도와준 친구고, 가족인데.
"아아아악……!"
하마돈과 딱구리, 메깅은 키쿠노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르며 키쿠코를 맹렬히 공격했다.
키쿠코도 팬텀과 아보크 등을 꺼내 응수했다.
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키쿠노는 그것이 격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키쿠노는 너무나 약했다.
수십 년 전과 같은 냉정한 응수였지만 패기가 없었다.
힘이 없었다.
키쿠노의 포켓몬들은 난폭하게 키쿠코의 포켓몬들을 몰아대었고, 키쿠코의 포켓몬들은 키쿠노의 포켓몬을 막아내지 못 했다.
다음 순간, 키쿠노는 넘어진 키쿠코 위에 있었다.
키쿠노는 키쿠코를 보았다.
키쿠코는 아무런 표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항상 활기차고 발랄했던 웃음도
바보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짝이던 눈망울도
이별의 순간 보여준 우울할 미소도.
키쿠노는 키쿠코의 얼굴을 정신없이 살폈다.
폐인인 언니의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고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픔, 고통, 괴로움, 절망, 고독, 좌절, 원망, 분노, 증오……
아무 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차가운 비열함만이 감돌았다.
키쿠노의 눈에서 새어나온 물이 키쿠코의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키쿠코는 키쿠노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키쿠노는 키쿠코의 입술을 보았다.
탄력있고 촉촉하던 입술이 비루하게 말랐다.
버석버석 거릴 것 같고 핏기가 없어 하앴다.
입술이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키쿠노는 울면서
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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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아직 표현하고자 하는 게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네요 ㅠㅠ

내공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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