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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우수소설 포켓몬 열전 4.나이트메어

시랑 2008.06.11 09:41 조회 수 : 34

세비퍼

"아핫하하하하"
그녀는 광적인 웃음은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난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심, 그러니까 드디어 그녀가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하, 당신의, 후우, 승리야, 하아."
나는 순간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가 완전히 숨을 고를 때까지 내가 그저 멍하니 있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당신의 승리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 끝이라고. 숙명적인 싸움이 끝나고, 이제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만이 흐를꺼야. 물론 그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쪽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겠지만 말야. 응? 이봐, 설마 그 상태로 기절한 건 아니겠지?"
"설마."
내 입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이젠 끝이다. 수천 년간 자손에서 자손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싸움은 이제 그녀와 나로 인해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나의 후손들은 몸에 새겨진 본능에 따라 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저지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말 축복할만한 날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난 즐거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이제, 끝이구나."
나는 그 말을 누가 내뱉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는 마지막 쟝고와 마지막 세비퍼, 그리고 폭포 소리 뿐이지만 말소리는 나도 그녀도 아닌 누군가가 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계속 말했다.
"숙적이 사라질 테니 우리들은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지금과 같은 악몽은 다시는 꾸지 않을 테지. 나도, 당신도. 하지만 난 악몽에서 깨어나는 이 순간이 오히려 두려워. 왜일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나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영겁으로 느껴지는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침을 뱉듯이 말했다.
"말해두는데, 나에게 조금만 힘이 남아있었더라면 당신을 베어 버렸을 거야."
나는 속으로 웃었다.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자 잔잔한 즐거움이 찾아왔다.
"낭만주의자처럼 얘기하지 마. 이것은 현실이고, 당신은 현실과 허구를 잘 구별하는 편이었어. 아니었나? 아니라면 내 눈이 병신이란 말이겠지."
"당신의 눈은 정상이야."
"그렇다면 주저하지 마. 비열한 승자의 웃음을 지으라고. 나와 당신 모두 다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남은 쪽이 행복할 수 있어. 당신은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거야?"
"행복해지고 싶어."
"그럼 찔러! 악몽에서 깨어나라고! 계속 이런 식이면 악몽에서 깨어나는 쪽은 오히려 내가 되고 말거야!"
그녀는 내 꼬리에 얼굴을 바짝 갔다대며 사납게 외쳤다. 나는 그녀의 상냥함이 담긴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 대신 그녀가 행복해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항상 내가 바라온 소망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난 이 장대한 싸움의 끝에서 내 멋대로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럼."
마치 내일 다시 만나자는 인사와도 같은 짧은 웅얼거림을 끝으로, 내 꼬리는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잔인하게 내리쳐졌다. 그것은 마치, 벼락과도 같았다. 그리고 벼락이 떨어진 나무 같은 형상을 한 그녀는 치솟는 불길 대신 짙은 피를 뿜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그녀 위에서 내려왔다. 몸을 엄습하는 고통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정신력만으로 견디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아직 쓰러져서는 안 된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이끌며 나는 폭포로 다가갔다. 마지막 싸움의 배경이 된 폭포는 싸움의 무게를 그대로 나타내는 듯 웅장하게 울어대었다. 나는 몽롱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피분수를 뿜어대는, 이제는 더러운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녀와 내 피로 이루어진 검은 길이 보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폭포는 싸움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흘렀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폭포가 얼마나 긴 세월동안 그 자리에서 흘러왔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싸움보다 더 오래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폭포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악몽은, 악몽이지만, 깨어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거였어."
그리고 나는, 길고 긴 싸움의 끝에서, 내 멋대로, 우리보다 어린 폭포 밑으로 우리를 가라앉혔다.
악몽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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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유난히 짧아졌네요;;
역시 대사를 쓰는건 어렵습니다 ㅠㅠ

태클, 지적, 충고 등등 많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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