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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우수소설 포켓몬 열전 7.머스터드소스

시랑 2008.06.16 11:10 조회 수 : 34

사내가 안에 들어오자 홀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지배인은 할 수 없이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며 어느새 자리를 잡은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 점잖게 보이기 위해 애쓰며 그를 불렀다. 사내가 잡아 찢을 듯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조금 움찔하긴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손님, 홀 안에서는 포켓몬을 볼에 넣어주셔야 하는데요."
사내는 지배인이 바라는 대로 '그래요? 이곳은 처음이라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페르시온을 볼에 집어넣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겉옷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곧 푸르게 빛나는 보석 하나를 꺼내 지배인에게 던졌다. 엉겁결에 보석을 받아든 그는 당황해서 보석과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그의 시선은 보석에게만 쏠리게 됐다. 보석감정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든 것이 가짜 사파이어가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알았다. 지배인은 곧 환한 얼굴을 하며 사파이어를 자신의 윗주머니에 고이 넣어두고 사내에게 다가갈 때보다 훨씬 점잖은 말투로 말했다.
"포도덩굴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닭가슴살과…"
"그럼 그거 가져와."
지배인의 비하면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지만 지배인은 신경 쓰지 않고 허리를 깊이 숙인 후,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희희낙락하게 주방으로 쳐들어갔다. 홀 안의 사람들은 지배인의 급변한 태도에 고개를 저었지만 아무 말 않고 각자 자기 음식과 술만 퍼먹어댔다. 지배인이 주방으로 들어간 후 사내는 속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낸 다음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어놓고 방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자세를 취하더니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근처의 노인 하나가 연기에 쿨럭 댔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음식은 금세 나왔다. 지배인이 직접 곡물에 닭고기와 야채 등을 넣고 버무린 후 구운 듯한 음식을 들고 나왔다. 홀 안의 사람들이 지배인에게 왜 자신들이 시킨 음식은 그렇게 빠르게 나오지 않았냐는 의미가 담긴 시선을 잔뜩 보냈지만 지배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정중한 몸짓으로 사내 앞에 그릇을 내려놓은 지배인은 사내 옆에 공손히 섰다. 마치 몸종과 같은 행동이었다. 지배인이 내어놓은 음식을 멀뚱히 바라보던 사내는 팔로 지배인을 툭 치며 굵은 목소리로 짜증스럽게 말했다.
"접시는?"
"네?"
"이 녀석 먹이려면 접시가 하나 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지배인은 그런 주문은 받지 못했다는 변명 같은 것을 웅얼거리다가 사내의 눈빛을 보고 흠칫 놀라 주방으로 튀어갔다. 다시 뛰어나오는 그의 손에는 우유가 가득 담긴 대접 하나가 들려있었다. 지배인은 우유가 넘치지 않을 정도의 빠른 걸음걸이로 사내에게 뛰어가 페르시온 앞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를 펴 뼈다귀를 물고 온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찡그린 채 지배인을 보던 사내는 페르시온이 우유에 얼굴을 들이밀자 신경질적으로 그 그릇을 빼앗더니 바닥에 우유를 부어버렸다. 사내의 느닷없는 행동에 지배인도, 홀 안의 사람들도, 그리고 페르시온도 놀라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페르시온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다시 놀라야 했다. 사내가 쥐똥 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지배인의 옷자락으로 그릇의 우유를 닦더니 탁자 위에 놓여있는 머스터드소스를 몽땅 붓고는 다시 페르시온 앞에 내려놓은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페르시온이 오히려 반가운 얼굴로 머스터드소스를 핥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내의 엽기적인 행동과 더욱 엽기적인 페르시온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지배인도 모욕적인 기분과 놀라움 중에 어느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사내가 하나 더 던져준 사파이어에 기뻐하며 걸레를 들고 와 빠르게 우유를 치웠다. 그리고 사내의 주문대로 그 여관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왔다.
사내는 지배인이 포도주를 놓고 사라진 후에야 입에서 파이프를 떼었다. 의자에 걸쳐놓은 옷에 파이프를 잘 갈무리 한 후 사내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지배인이 닭가슴살 어쩌고 했지만 그것은 그냥 닭다리살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조용히 먹었다.
음식을 다 먹은 사내는 아직도 그릇바닥을 핥고 있는 페르시온을 보며 천천히 포도주를 마셨다. 잠시 후 페르시온이 머스터드소스를 다 먹고 얼굴을 문지르며 가르랑 거릴 때 쯤 사내도 포도주 한 병을 다 마셨다. 겉옷을 다시 챙겨 입은 사내는 파이프를 다시 꺼내 물며 지배인을 불렀다. 사내는 헐레벌떡 뛰어온 지배인에게 금편 몇 개를 주며 그 돈으로 방금 자신이 마신 포도주를 살 수 있는 만큼 가져오라고 시켰다. 지배인은 다시 헐레벌떡 뛰어가 큰 동이에 포도주를 담아 왔다. 사내는 페르시온이 싹싹 핥아 먹은 그릇도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말하며 여관을 나섰다.

사내와 페르시온은 조그만 동산을 올랐다. 아무 곳에서나 털썩 주저앉은 사내는 입에서 파이프를 떼었다. 사내가 앉은 곳에서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여관과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내는 파이프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조금 전에 대장간에서 사온 손도끼를 꺼내 잔디 위에 내려놓았다. 사내는 페르시온이 손도끼를 보고 놀라 도망가거나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페르시온은 무슨 생각인지 사내 옆에 엎드려 겨자향이 가득한 하품만 기분 좋게 해댈 뿐이었다.
사내는 동이의 뚜껑을 땄다. 오래된 포도주의 향이 물씬 풍겼다. 여관의 지배인은 포도덩굴로 담갔느니 어쨌느니 자랑을 해댔지만 이건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포도주였다. 사내는 맛만 좋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머스터드소스가 담겨있던 그릇을 꺼내어 술로 살짝 헹구고 페르시온 앞에 놓았다. 그리고 마치 사람에게 술을 부어주듯 그릇에 술을 가득 부었다. 페르시온은 커다란 술잔을 흘끗 보고는 다시 사내를 올려보았다. 사내는 페르시온이 짓는 표정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겠다고 생각하며 술을 들이켰다.
사내는 잠시 후 페르시온에게 대답하듯 혼잣말을 했다.
"어쩌겠냐."
페르시온은 앞발에 턱을 얹은 채 사내를 쳐다봤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는 건 그저 범죄의 한 종류고, 포켓몬이 살인을 저지르는 건 미쳤다는 증거라는데 말이야."
사내는 동이를 기울여 술을 입에 때려부었다. 사내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사내는 동이에서 입을 떼고 한숨을 푸욱 쉰 후 다시 말했다.
"게다가 그 포켓몬의 처리를 주인에게 맡기다니 너무 가혹한거 아니냐고. 이따위 세상."
사내는 마을을 바라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돈에 굽실거리는 세상도 그의 페르시온에게 만큼은 잔인했다. 그는 생명의 은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더욱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사내는 문득 말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걸 맘껏 먹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 뿐이구나. 이 식성 독특한 녀석아."
사내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동이를 흔들었다. 동이는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사내는 빈 동이를 집어 던지며 아직 술이 가득 담겨있는 페르시온의 그릇을 보았다. 그는 피식피식 웃으며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려놓았던 손도끼를 집어 들고 휘적휘적 일어섰다. 페르시온은 고개를 들었지만 그를 따라 일어서지는 않았다. 그는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페르시안을 보며 조금 슬픈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손도끼를 높이 들어올렸다.
"용서해라."
페르시온의 얼굴에 순간 어떤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그 표정이 익숙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자주 짓곤 하는 표정이었다. 네 맘 다 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온화한 표정. 그의 이성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소리쳤지만, 그의 취한 감정은 그것이 페르시온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표정이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는 울 것 같은 기분 속에 도끼를 내려쳤다. 짙은 겨자 향만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페르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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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타드소스를 먹다가 충동적으로 썼는데...
역시 충동적으로는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포켓몬 이름은 가장 마지막에 달겁니다.
그 포켓몬에 대해 잘 표현해야 하는데
맨 앞에 포켓몬 이름을 달아두니 표현이 부실해도
스스로가 그냥 넘어가버리는군요;;

그럼, 많이 꾸짖어 주십시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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