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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우수소설 포켓몬 열전 15.포기

시랑 2008.06.29 17:23 조회 수 : 38

"같이 가도 돼요?"
그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입을 쩍 벌렸다. 몇 년 동안 버스표만 팔다 보면 가끔 이렇게 정신이 나가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번 실수는 너무나 컸다. 그는 나를 정신 나간 여자라고 판단하겠지. 나는 실수를 무마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생각했고 결국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것을 대답을 기다리는 침묵으로 해석했나보다. 그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예."
나는 그것이 같이 가도 된다는 승낙의 말인지 어이가 없어서 무의식중에 나온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어쩐지 분위기에 휩쓸려 고백해버린 사춘기의 소녀 같다고 생각했지만(실제로 그랬다) 얼떨떨하게 있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기에 멋대로 승낙의 말이라고 결정짓고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희열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몸이 떨려 옷을 갈아입는 것이 힘들었다. 오늘 이런 망언을 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여성스러운 옷을 입고 오는 거였는데. 그럼 조금이라도 덜 창피할 테니까. 이러저러한 생각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야 제대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난 재빨리 그 옆자리의 표를 끊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언제나와 같은 하얀색 티셔츠에 세로줄 무늬 와이셔츠를 입고 조그만 갈색 가방을 옆으로 맨 채 물병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청바지에 회색 물방울무늬가 박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말라깽이 시골 처녀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가 놀란 것은 사복을 입은 내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멀뚱히 서 있었다. 나는 조금 초조해졌다. 내가 옷을 갈아입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곧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었고 우리는 아직도 터미널 안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내가 시계를 보는 척을 하자 그도 그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 성큼성큼 걸었다. 나는 그의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보며 조금 웃음이 나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를 따랐다.
버스에는 자리가 잔뜩 남았다. 휴가철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날에 바다에 갈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조금 부담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물을 마시며 그것을 지워버렸다. 그는 문득 생각난 듯 물을 권했고 나는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버스 안에는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말도 없었고 그가 완강히 창밖만을 보고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후회만 죽도록 했다.
버스는 바다에 꽤 가까운 곳에서 멈췄다. 해변과 우리가 서 있는 곳 사이에는 나무 몇 그루만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그가 앞장서야 한다. 그는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까지 멀뚱히 바다를 보며 서 있었더니 버스가 보이지 않게 되자 등을 돌렸다. 그는 버스에 타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었고 다리가 짧은 나는 그를 쫒아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걷기가 수월해졌다. 어리둥절해 하던 나는 그가 걸음을 늦춘 것을 알아챘다. 점점 바위가 많아져 걷기가 힘들어진 것일 테지만 나는 그가 나를 배려해 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밑창이 얇은 신발을 신어 발바닥이 아픈 상황을 버티는데 도움이 되니까. 차마 내 입으로 그의 상냥함에 새삼 반하겠다는 어린애 같은 말은 도저히 못하겠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었으면 좋았겠지만 햇빛이 말려버렸는지 전혀 불지 않았다. 그리고 뜨거운 햇빛은 돌까지 태워버렸는지 갈수록 바위는 검어졌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걸었을 때 조그만 백사장과 그 위로 바위가 다이빙대처럼 솟은 곳이 나왔다. 주변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그와 나만의 비밀 장소'쯤 될 만한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실제로 그의 비밀 장소였다. 그는 신발과 양말을 벗더니 찰박거리며 바다로 조금 들어갔다. 그리고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에 대답하듯 조금 먼 곳에서 뀨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이 나타났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아니, 조금으론 부족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라프라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큰 바위는 정말 다이빙대처럼 생겼고 그래서 나는 그것을 자연의 다이빙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위로 올라온 것은 다이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물로 뛰어들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제쳐두더라도 바위 밑의 바다는 뛰어들기에는 너무 얕았다. 그래서 나는 바위 끝에 걸터앉아 그저 바다 저편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닿는 곳에서 라프라스가 기분 좋게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볼을 얹었다. 이곳은 시원하고 짭짤한 바람도 불어 기분 전환하기에는 제격인 장소였다. 그리고 남녀 둘이서만 있는다면 좋은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뒤에서 그가 넌지시 말했다.
"왜 따라오겠다고 했습니까?"
나는 그를 올려보지 않았다. 아직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버스에 타고서 처음으로 그가 말을 건넸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버스에서 후회와 함께 그의 질문에 대답할 말들을 수없이 떠올렸지만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엉뚱한 말을 꺼냈다.
"세 달이네요."
그가 나를 내려다 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뒤통수에 의문의 시선이 꽂히는 듯 했고 나는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내가 허둥거리며 변명을 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예. 세 달이군요."
라프라스가 큐우 하고 크게 울었다. 맑은 울음소리 한 번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다. 라프라스는 바다 속으로 한 번 들어갔다가 돌고래가 뛰어오르듯 다시 나왔다. 물보라가 이는 그 모습이 왠지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순간 그 모습에 매료되었다. 라프라스가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라프는 어렸을 때부터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나니 집 안에 있을 곳이 없더군요. 어쩔 수 없이 놔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곳에나 풀어놓으면 밀렵꾼에게 잡히거나 온갖 텔레비전에 출현하게 될 테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간신히 떠올린 곳이 이곳이었는데 언제 들통 날지 모르니 불안하기만 하군요."
나는 세 달 동안 괜찮았으니 걱정은 그만해도 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100일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라프라스가 걱정되어 찾아오는 사람에게 함부로 그런 소리를 할 순 없다. 나는 위로나 좋은 해결 방법 등을 그에게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라프라스만을 바라보았다. 라프라스는 묘기 수준의 헤엄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라프라스는 우아하게 회전한 후 바다 속으로 잠수했다.
라프라스가 그 얼굴을 물 밖으로 다시 드러냈을 때 그가 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라프라스가 다가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가 속삭였다. 나는 세찬 바닷바람에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뭔가를 말했고 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것이 좋았다. 그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라프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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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이따위군요.
여러 가지 변명거리를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게 없군요.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미없다'입니다.
쓰는 사람이 재미가 없는데 읽는 사람이 재밌을 리는 없겠죠.
그래도 꽤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3주 만에 포기하고 마는군요.
역시 저는 글 쓰는 데는 재능이 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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