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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에도(江戶).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세운 에도막부(江戶 幕府)의 중심부이다. 에도의 성 주변에는 농부들이 살고 있었다.
해마다 항상 이 곳에 와야 하는 지방 영주[다이묘, 大名]들과 도시를 넘나들며 장사를 하는 상인(商人)이 아닌 자들은 성 안으로 들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 주위의 농촌이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다.
유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민박(民泊)집이 있는 가 하면, 조선(朝鮮)의 5일장과 같은 장이 서곤 한다. 수 많은 마을 사람들로 꽉 찬 길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코 양 옆으로 비죽 튀어나온 수염을 가진,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노란 망토를 꽉 움켜쥔 체 맨발로 걸어가는 말라깽이가 사람들을 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이나 어깨를 부딛힌 사람들은 한 걸음 물러나면서 코를 찌푸리거나 인상이 일그러졌다. 남자는 사람들의 표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남자는 이런 자신을 한심스럽게 여겼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험한 일을 맡게 되었냐......?'

남자가 에도를 빠져 나가기 하루 전. 남자는 의뢰자가 머물고 있는 숙박집에 들렀다. 남자는 숙박집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숙박집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남자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주일 전, 그 앞으로 빨간색으로 적은 의뢰서가 자신에게 온 적이 있었다. 의뢰서에는 하얀 종이 위로 빨간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일주일 후에 적힌 장소로 모시(某時)에 정확히 올 것.

약속을 어길 시에는 기록에 사용된 피의 주인이 될 수 있음.

찾아 올 때에는 이 종이를 반드시 지참해서 가져 올 것.


  남자는 자신 앞에서 가부좌로 앉은 중년에게 자신에게 보내진 종이를 보여 주었다. 파란 도복의 승복을 입은 중년은 그 종이를 받고는 자신의 품에 넣어 두었다. 남자는 자꾸만 마른 침을 삼켰다.
시선을 바로 보고 싶지만 자신을 무섭게 째려보는 중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는 쿵쾅거리는 억지로 진정시키며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저......저는...... 네즈미오토코라고 합니다. 이번에 텐치마루(天地丸) 님의 의뢰를 받게 된......"
"......알면 됐다. 저쪽에 앉아."
네즈미오토코는 텐치마루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자신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소문을 들은 모양인지 그는 특단의 조치를 어느 정도 취했다. 텐치마루는 네즈미오토코의 행동을 보면서 그의 정체를 이미 파악했다.
그가 요괴(妖怪)인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아서 그는 표정으로 네즈미오토코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요괴 네즈미오토코는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텐치마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가 자신을 억누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찾아 주었으면 한다."
'......사람?' "저...... 사람이라면...... 텐치마루님과 친하신 분입니까?"
네즈미오토코의 말이 끝나자 둘 사이에서 순간적인 침묵이 흘렀다. 그는 또 다시 마른 침을 삼켰다.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이제 저세상으로 가는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 텐치마루의 입이 열렸다.
"...잘 알고 있군. 분명 내 아들을 만난 건 아닌데 어떻게 알고있지?"
'아,아들?' "저기...... 제가 듣기로는 텐치마루님에겐 자식분이 3명이라고 들었는뎁쇼......"
텐치마루는 눈을 번쩍였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자녀가 3명이라는 것까지 뭔가 모자라 보이는 요괴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즈미오토코는 몸을 웅크리며 벌벌떠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아이고 죄,죄송합니다요. 소인이 뭣도 모르고 그냥 나오는 말만 내뱉어서......"
"흠......"
텐치마루는 긴 한 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또 다시 순간적인 침묵이 흘렀다. 텐치마루는 잠시 생각하더니 벽장문을 열고 뒤지기 시작했다. 긴장한 표정의 네즈미오토코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
'이 이상 모든 비밀을 알아버렸으니 자신을 죽이겠다'라는 요괴의 본능이 떠 올랐다. 무릎 위에 올린 그의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어찌나 벌벌 떨고 있던지 그 앞에 있던 찻잔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벽장을 뒤지던 텐치마루는 한 손에 무언가를 꺼냈다. 족자였다. 텐치마루는 요괴 앞으로 족자를 펼쳤다. 족자 안에는, 7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12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네즈미오토코는 그림을 유심히 봤다.
"귀엽지? 왼쪽에 있는 아이는 시로마루(司狼丸)고, 오른쪽에 있는 아이는 이츠키(伊月)야.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사라졌다고?' "저 혹시 찾아달라고 하신 아이가 여자아이분 이십니까?"
"아니, 그 왼쪽에 있는 아이야."
'왼쪽에 있는 아이라면 시로마루를 말하는 건가.' 네즈미오토코가 열심히 그림을 보는 동안 그림 옆으로 또 다른 한 장의 그림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15살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저기...... 혹시 이 그림에 그려지신 분이 시키마루 님이십니까?"
텐치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즈미오토코는 이상하게 여겼다. 자신이 알아 본 바로는 텐치마루에게 자식이 3명이라고 들었는데, 그림에 그려진 한 사람 -시키마루를 제외한- 이 그의 자식이니
자식이 4명이라는 모순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텐치마루의 자식 3명 중 2명은 모두 이복자식이란 말인가. 네즈미오토코는 텐치마루에게 이 것에 대해 말을 꺼내려고 했다.
"자네가 해야 할 임무는 간단해. 그 종이조각에 그려진 내 아들놈을 찾아오기만 하면 된다."
"아,아,아드님이요? 그, 그치만...... 이 걸로는 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만......"
네즈미오토코가 말 끝을 흐린 순간 텐치마루는 다시 한 번 눈을 번쩍였다. 네즈미오토코는 이제 본능적으로 다시 웅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네,네!!! 아,아,알겠습니다!!! 분명히 찾아 오겠습니다!!!!!"
숙박집을 빠져나오면서 네즈미오토코는 다리가 순간 풀려 털썩 주저 앉았다. 텐치마루의 몸에서 내뿜은 기로 가득 찬 방에서 빠져나와서 기운이 빠진 탓도 있겠지만, 자기와도 상관 없는 남의 자식을 3주 안에 찾아내라고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네즈미오토코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다시 추스르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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