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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단편 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p

ra 2010.11.10 21:28 조회 수 : 95

토요일 날 고장난 휴대폰을 아직 A/S 센터에 맡기지도 않았다. 오늘 갑자기 학교에서 통보 받은 이 소식은 민준에게서 그런 이유를 뺏아가기에 적합했다. 월요일 늦은 저녁 들어선 자그마한 그렇지만 넓은 건물 1층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있었다. 민준은 그것이 다소 신기해 보였다. 매장이 작지도 않고 굉장히 넓어서, 뭔가… 하루에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매우 쓴 맛을 느끼고 돌아가겠구나, 하고 느꼈다. 그 중에 아무 의자에나 앉았다. 뭔가 마실 생각은 없었고 어차피 앉는 것 정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자리에 앉으니까 피곤이 몰려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노릇일까. 아침에도 듣고 조회 시간에도 매 수업 시간에도 종례 시간에도 들었던 2일 지난 소식. 당연히 내가 알았어야 할 텐데 가장 늦게 알아버린 이 슬픈 소식. 현실이라고 믿지 않으면서 집에 가 쉬고 싶었지만 현실임을 실감한 오후 7시의 뻐꾸기 소리에 달려왔다. 오면서 이게 사실이 아니라 장난이나 꿈이길 기대했지만, 입구에 있는 커다란 전광판이 그 기대를 박살냈다. 걸을 수가 없어서 넘어지듯이 의자에 앉았더니.
보통 다른 사람들도 이런 장소에 오면 이렇게 현실이 믿기지 않아 현기증에 걸린다던데. 만화 같은 걸 보면 많이 나오지 않나? 만화 속에서만 그런 걸까. 걸어서 밑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왜 내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까 늦은 밤인데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 뜨겁고 쓴 커피를 앞에 대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넓은 벽에는 대형 티비가 네 대 걸려 있었는데, 방송이 나오고 있는 티비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전부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밑의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누가 있는지…

이런 데 계속 앉아있으면 안 되는 것을 자각하고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계단에서 사람들이 올라왔다. 아, 전부다 아는 얼굴이다.

"어…너 왔냐."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었다. 같은 반 반장이다. 하긴 모두 같이 왔겠지. 이렇게 나 혼자서 이런 데 오는 경우가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고 민준은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그렇게 친했던 애고, 이 슬픔을 공유할만한 사람이 없는 이상 혼자서 올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녀와는 완전히 똑같은 슬픔을 가지지 못하니까, 같이 오면 더 마음만 아파졌겠지 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반장에게 인사를 해야지. 그래.

"어. 하이."

하이 라고 인사를 던지는 자신이 순간 미웠다. 민준은 그게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장소와 그를 짓누르는 슬픔에 구애받아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
반장은 한 7명 정도의 같은 반 아이들과 같이 있었다. 인제 돌아가려나 보다.

"시아는 밑에 있어."

7명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럭저럭 친한 녀석이고 민준이 시아, 정호랑 친했던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이렇게 말해주는 거겠지. 민준은 그 배려에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이런 일반적인 배려조차도 민준에게는 엄청 큰 쐐기처럼 박혔다. 배려가 아프다. 마음을 찔러온다. 인제 누구랑 점심을 같이 먹으러 다닐까. 물론 얼마든지 애들 사이에 낄 수 있겠지만 그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정호가 보고 싶었다. 그래 내려가면 볼 수 있는데. 그런데 걸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반장 일행은 뭐라뭐라 말하고 있다. 자신을 배려해주거나 정호를 생각해주는 말이겠지만 민준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후부터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니 정말로 갑자기 믿지 않았던 사실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 같다. 물론 현실화되는 과정에는 이렇게 같은 반 친구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도 있겠고, 시아에 대한 얘기가 나온 탓이 있을 것이다. 시아에 대한 생각과 말이 자신을 매우 무겁게 짓눌렀다.

뭐라고 말을 하고 친구들은 돌아갔다. 민준은 일어섰다. 그렇지만 다리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저 그렇다고 느꼈을 뿐. 흐물흐물하게 걸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난간에 손을 대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민준은 아무 곳도 아프지 않았지만, 이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대해서 정신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이 땅에서 떨어질 때마다
하늘에서부터 누군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


시아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지금은 핑계를 대서 정면을 바라보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런 곳에서 괴롭다.

"민준이 왔구나."

정희 누나가 말을 걸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지금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정호는…저 안쪽에 있어."

손에는 젖은 손수건이 들려 있다. 민준은 늦게 왔으니 아마 그동안 누나는 있던 눈물 없던 눈물 다 흘렸겠지.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민준은 꾸벅 인사하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을 돌렸는데도 누나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커다란 슬픔이 하나 움직이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할까.

워낙 큰 병원이니까 방이 여러 개 있는 건 당연하다. 문 앞에는 하얀 조화들이 늘어서 있었고, 정호가 있는 방은 왼쪽에서 두 번째 방이었다. 전광판에서 2호라는 걸 확인하고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우는 소리도 들리고 절규도 들린다. 돌아오라면서, 왜 벌써 갔냐면서, 자신은 어쩌냐면서. 감정의 끈이 끊어질 것 같았다. 애써 참아오던 슬픔이 목구멍까지 밀어올라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모든 신경, 사고가 눈물을 참는 데 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을 참았다. 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짜~안…"

떨림 있는 울림이 볼에 닿았다. 소리를 담은 채 차가운 따듯한 알루미늄 캔이 볼에 닿았다.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른 마음이 밑으로 숙 내려갔다.

"요거라도 마셔!… 그래서 힘 내야…"

정희 누나의 말 맨 뒤가 계속 떨린다. 누나도 참고 있다. 차가운 알루미늄 캔을 받았다. 누나 눈을 마주 보았다. 촉촉한 푸른 빛으로 칠해진 듯한 눈망울이 보였다.

"고마워 누나…."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더 하면 애써 삼킨 마음이 올라온다.

"시아 안에 있을 테니까 들어가봐!… 혼자 울던걸…"

누나 입에서 시아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놀랐다. 아무리 친하게 지냈어도, 남동생 장례식장에서 남동생의 여자친구를 위로해 주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같은 양의 슬픔을 떠안고 있을 뿐인데,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나도 뭐라고 시아를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머릿속에 빈 가득찬 생각을 손에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희 누나는 담배를 피러 나가는 것 같다. 정호 술 가르치고 담배 가르치는 건 내 몫이라면서 나 보고 나쁜 거 옮게 하지 말라면서 웃었는데. 가르쳐주기로 했던 담배를 받아 피워줄 사람은 이미 없다. 왜 그렇게 간단하게 가버렸을까.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이었을까. 아직도 난 꿈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슬픈 회색 푸른빛으로 물든 민준의 머리가 생각했다.

간단한 식사, 술, 안주 따위를 먹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 다 슬퍼 보였다. 개중엔 화투를 치는 사람도 보였지만 그 판은 결코 유쾌해 보이지 않았다. 만발한 꽃들은 하얗지도 않으면서 어떤 조화보다도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구석에 앉은 시아가 보였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확실히 사아였다. 민준은 다가가려고 움직였으나 먼저 꽃이라도 정호에게 바쳐야 한다고 떠올렸다. 시아는 울다 지쳐 잠든 건지,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꽃만 바치고 나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내가 뭘 했지. 정호 어머니한테 인사하고 꽃을 들… 아, 생각할 수가 없다. 생각할 수가 없다. 왜 영정 사진은 그렇게 웃고 있는 얼굴을 가져다 썼을까. 아니 웃으면 그나마 네가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활짝 웃어줘. 왜 그렇게 은은한 미소만 띄고 있는 거야. 행복하단 거니? 가장 친한 친구였던 나를 두고 갔는데 행복해? 네가 그렇게 사랑하고 너를 그렇게 사랑하던 시아를 두고 가서 행복하냐고. 윤정호. 행복하냐고 묻잖아. 왜 대답을 안해…

마음 속으로 울리는 공허함과 쓰라림이 민준을 괴롭히고 괴롭혔다.정희 누나가 준 캔을 땄다. 칙 하는 소리가 났고 민준은 단숨에 캔을 비워 버렸다. 음료를 목 뒤로 넘김과 동시에 슬픔도 함께 넘어가길 바랬다. 그러나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내가 저 애와 그렇게 친했던가. 이렇게 슬픔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친했구나. 근데 인제 그걸 누가 증명해 주지? 본인은 죽었다. 아무도 민준이 그 애와 친했다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확실하게 증명해 줄 수 없다. 오직 정호가 직접 어깨동무 걸어오는 것,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친한 친구라는 걸 증명하는 수단 아닌가? 소리 지르고 싶었다. 내 기억에만 남을 뿐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래서 시아는 저곳에서 죽은 듯 자고 있다. 눈물을 옷소매에 닦고 그 쪽으로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시아는 앞머리에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인다. 그 위로 앉은 검은 이어폰 줄이 보였다. …시아 껀 빨간 색인데. 이건 정호 이어폰이구나. 그럼 MP3도 정호 껀가?

민준은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시아는 자는 것이 아니다. 음악의 박자에 맞춰서 조금씩 고개를 들썩이고 있다. 무슨 노래지? 손을 뻗었다가 내렸다. 뭐라고 하려고. 가만히 노래듣는 애한테 손 뻗어서 이어폰 뺏는 추태가 어딨어.

"기타 치고 싶다."

아마 이어폰에 가려서 시아는 듣지 못하겠지만, 무작정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내가 왜 말을 했지? 하면서도 민준은 자신 맘 속에 아주 강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로 기타가 치고 싶었다. 학교 축제 때 공연하려고 정호랑 시아랑 맨날 학교에 남아서 연습했었는데. 정호가 베이스, 시아가 키보드. 드럼이랑 보컬은 3학년 선배인 예리누나, 희영누나. 그러고보니 둘 다 벌써 왔다 간 건가? 토요일 방과 후에 내가 치과 예약이 있어서 나만 빼고 모두 연습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타이밍에 정호가 혼자 나갔던 걸까. 맞아. 처음 나한테 정호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건 예리 누나다. 오늘 아침 아무렇지 않게 등교중에 예리 누나를 만났고, 이 슬픈 소식을 들었다. 왜 인제서야 알려줬어요. 우리 집 알잖아요. 왜 토요일 날 바로 안 알려줬어요? 왜요…

예리 누나는 그냥 울었다. 미안해 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안타까웠길래 등을 토닥여주고 내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울지 말아요…. 누나도… 누나도 힘들었잖아요. 예리 누나는 대꾸 없이 목도리 끝을 잡고 끄덕끄덕할 뿐이었다. 모두가 하루 종일 정호 이야기만 했다. 민준에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점심식사는 입에 들어오지 않았고 저녁은 무언가 먹긴 먹었지만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 정호가…"

갑자기 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말했다. 민준은 순간 놀랐다. 혹시 처음부터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눈물이 흐른 흔적이 있었다. 애써 눈물을 참고 모든 감정이 다 진정될 때까지 노래를 들은 다음 나에게 말을 건 것일지도. 시아는 더 말을 하지 않고 오른쪽 귀에 끼고 있던 검은 이어폰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받아 내 귀에 꽂았다.

'날, 널 잊게 내버려두지 마.'

무슨 노래인지 듣자마자 알 수 있다. 예리 누나랑 희영 누나한테 비밀로 셋이서만 연습하던 곡이 있다. 이걸 할 땐 내가 보컬 및 기타였다. 처음에 갑자기 정호가 밴드부 실로 달려들어오더니 CD를 오디오에 넣고 틀어준 곡이다.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호가 너무 좋아해서 그래그래 하면서 연습해봤다. 이상하게 연주하면 할수록, 불러보면 불러볼수록 머릿속에 깊게 자리했다. 정호의 열정이 와 닿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시아는 계속 이 노랠 듣고 있던 걸까. 정호가 생각나는, 너무 슬픈 이 노래를 가사를 들으면서 정호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올라갈래?"

노래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이런 곳에서 시아를 보고 있기 싫었다. 바로 눈을 돌리면 정호가 누워 있을 텐데. 시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 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아가 앞머리를 넘겼다. 항상 시아는 길게 기른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서 핀으로 고정했는데 주머니를 뒤적뒤적거리더니 그냥 손으로 머리를 고정했다.

"머리핀 잃어버렸어?"

"…응."

민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는 얼굴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계단을 올라갔다. 스타벅스 매장엔 아까 봤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 중에 정희 누나도 있었다. 민준은 시아를 근처 자리에 앉히고,

"누나. 혹시 머리핀이나 머리끈 같은 거 있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잠시 민준을 쳐다보더니 왼쪽 뒷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어 주었다. "고마워" 인사하고 다시 뒤로 돌아갔다. 다시 앞머리로 가려진 시아 얼굴 가까이 손을 내밀어 머리끈을 보여주었다. 시아는 왼손으로 머리끈을 받고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다 잡아 뒤로 돌려 묵었다. 보이지 않던 얼굴은 물론 이마도 다 드러났다. 눈물 자국이 하얀 볼을 타고 앉은 게 보였다. 민준은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지갑이 있다.

"뭐 마실래? …"

시아는 눈을 크게 뜨고 민준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듯이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 앉은 이 의자랑 테이블이 어디 것인지 안 듯한 눈치로

"…모카. 차가운 걸로."

라고 말하며 지갑을 꺼냈다. 그러나 민준은 그 전에 등을 돌리고 주문하러 갔다. 가만히 스타벅스 점원의 손을 눈으로 따라가며 주문을 하고 돈을 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검은 것이 술잔 크기의 컵으로 들어간다. 정호랑은 커피 취향이 맞았다. 학교 밴드부는 전체 16명인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팀을 짠다. 우리는 희영 누나랑 예리 누나가 만드려던 팀에 들어갔다. 희영 누나가 예전에 사귀던 3학년 밴드부 남친이랑 같은 밴드에 있는 게 어색하다면서 베프인 예리 누나랑 같이 우리가 밴드부에 들어가자마자 만든 게 우리 밴드다. 다른 팀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선배나 후배도 종종 있지만, 희영 누나가 담배를 극도로 혐오하고 개인적으로 우리 셋 다 피울 만한 계기라던지 그런 게 없어서 아무도 피지 않는다. 대신 멋내기용인지 예리 누나는 종종 비싼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그거에 어느 새 우리 셋 다 옮아서 1학년 들어왔을 땐 커피 맛을 모르던 우리 셋 다 지금은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시아는 모카, 나랑 정호는 라떼. 그렇지만 웬지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 다섯 명이서 연습 끝나고 자주 학교 옆에 있는 카페에 갔는데, 원체 가격이 싼데 예리 누나가 단골이라고 좀 더 싸게 커피를 주었다. 그렇게 가면 항상 라떼나 모카를 시키는 우리를 보고 꼬맹이라면서 예리 누나는 아메리카노를 시켰었다. 그러면서 폼을 잡았는데, 희영 누나가 허세 쩐다고 한 마디 해서 다섯 명 다 빵 터진 적이 있었다. 그 다음번엔 한 번 정호랑만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셔 보았었다. 갑자기 그게 떠올랐다.

모카랑 아메리카노를 잡고 자리로 돌아왔다. 시아가 "아" 하면서 사천 원 정도롤 내게 주려고 했다. "됐어." 짧게 거절했다. 시아는 난처한 듯 시선을 커피 컵에 두다가 돈을 지갑에 넣고 지갑을 가방에 도로 넣었다. 민준은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맛봤다. …쓴 맛이다. 이만큼 썼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아도 커피를 한 모금 물었다. 우리 둘 다 곧바로 내려놓았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밑에서."

던질 수 있는 말이 이런 것밖에 없나? 말하기 전에도 고민하고 말하고 나서도 후회했다. 그걸 들어서 어쩔 생각일까.

"그냥…정호가 좋아했던 노래들이 문득 생각났어."

시아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나를 이렇게 남겨두고. 민준이가 사준 커피는 모카인데, 내 입에는 왜 이렇게 쓰게 느껴질까. 정호야, 나한테, 노래를 준 니가 왜 이렇게 날 아프게 만드니. 네 혼에 기억이 날지 모르겠어, 우리 처음으로 했던 얘기도 노래 이야기였어.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네가 만든 것 같아. 네가 듣고 있던 노래가 이어폰 틈으로 새어 나와서 내가 다가갔지. 그건 핑계야. 사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는 걸. 항상 그렇게 말이야 질리지도 않고 노래 이야기만 하고 기타 연습하고 싶다고만 하는 너를 보고 내 맘만 더 깊어져 갔었어. 그냥 쟤 좀 호감이다 이랬는데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간절히 바라는 맘으로 바뀐 거야. 지금 내가 얼마나 널 그리는지 알아, 정호야?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시아는 모질게 참았다. 이럴 수밖에 없는 자신이 처량했다. 민준이가 눈 앞에 있으니까 울면 안 된다. 얼른 고개를 들어야지 하면서 시아는 자신을 달랬다. 눈물이 나올 듯 하다가 들어갔다. 커피를 한 입 마셨다. 쓴 맛이라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노래가 무척 부르고 싶었다. 무척 노래만 부르고 싶었다. 내 눈앞의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난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을 것 같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민준과 시아는 팔을 부르르 떨었다. 슬슬 추워지는 계절이다. 차갑게 아프게 초저녁 바람이 들어와 모든 현실을 깨달으라는 듯 둘을 쓰다듬었다. 민준이 팔을 뻗어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셨다. 혀 끝의 쓴 맛은 기타 피크를 입에 물고 있을 때 느껴지는 그런 맛이었다. 정리가 안 된 머릿속을 일단 지금은 기타를 치자, 하고 생각하게 하는 맛이었다. 가끔 내가 먼저 밴드부실에 가면 그냥 생각 없이 기타를 쳤다. 그렇게 죽은 듯이 그렇지만 손끝은 계속 움직이면서 눈을 감고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 새 베이스랑 키보드가 따라왔다. 생각하려고 하면 끝없이 많은 추억을 생각할 수 있었다. 시아도 지금 같은 기분일까, 사실 얌전히 피아노만 치던 애였는데 정호를 따라 억지로 들어왔었지. 지금 악기를 만지고 싶니.그래?


짧은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침묵의 시간을 깨고 시아가 입을 열었다.

"지금 정호가 …"

말을 잠시 멈추었다. 슬픔이 아침식사 전에 데우는 핫초코처럼 끓어올랐다. 흑갈색의 거품 위에 우유를 올리듯이 손으로 슬픔을 덮었다.

"보고 있을까…?"

민준이 멍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시아를 쳐다보았다. 본래는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일단 영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만일 죽어서도 지금 그 애가 우리를 보고 있다면, 아쉬워하고 있다면, 혹시 그렇다면….

"그럴 거야, 분명히…"


"기타 치고 싶다고 생각했지?"

갑자기 시아가 치고 들어오듯 말했다. 좀처럼 말은 하지 않았고 커피도 줄어들지 않은 채 5분의 침묵이 깨졌다. 민준은 놀란 듯한 얼굴로 시아를 바라보았다. 시아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지금 굉장히 피아노가 치고 싶어…"

시아는 진심 가득 담긴 쓸쓸한 웃음으로 자신의 양손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피아노를 치는 시늉을 했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키보드 따위가 아니라, 1학년 때 음악실에서 봤던 그랜드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슬픈 음색이 들렸다. 그 노래구나, 했다. 원래는 피아노가 없어야 맞지만, 시아도 이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피아노가 치고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시아가 맨 처음 이 노래 좋다~~ 하고 정호에게 말했을 때 둘이 밤 열시까지 밴드실에서 같이 편곡했었다. 다음 날 피아노와 기타가 맞춰진 노래를 보고 난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마추어 둘이서 하루 고민해서 만들었다기엔, 정말로 확신하건대 너무 수준이 높았다. 민준의 극찬에 시아는 기뻐했고, 정호는 예리 누나의 전 남친한테 본격적으로 작곡을 가르쳐 달라고 하기로 했다. 밴드부에서 남을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큼 작곡을 할 수 있는 건 그 선배와 1학년 후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 수준인 만큼 잘 아는 사람이 들으면 어색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냥 듣고 즐기기엔 또 우리끼리 연주하고 부르기엔, 정말로 최고였다.

"우리 인제 그 노래 어떡해?"

시아가 말했다.

"베이스…도 없고, 난 정호 없이 그 노랠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민준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검은 점퍼를 타고 무언의 동의가 흘러내렸다. 커피를 마셨다.


정말로 우리는 그 노래 가사처럼
정호가 잊혀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여기 멈춰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베이스를 배워 봐."

갑자기 민준의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 강렬한 불길을 띄고 나타났다. 네가 이어서 해 줘… 정호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걸 말야. 시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키보드는?"

"몰라. 희영 누나가 키보드 정도는 칠 줄 알잖아. 어떻게든 되겠지."

"다른 사람한테 내 키보드를 넘겨주고 싶진 않아."

그건 그렇다. 민준도 기타를 계속 치고 싶을 것이다. 느닷없이 다른 걸 연주하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낼 것이다. 정호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어쩌면 내일 방과 후에 밴드부실에 갔더니 멀쩡히 베이스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아에게 베이스를 치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겠지. 그렇지만 정호가 내일 연습에 끼지 않는다면, 누가 베이스를 연주할까. 민준도 그의 기타를 넘겨주고 싶지 않고 시아도 그녀의 키보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정작 두 사람에게 다른 사람한테 베이스를 맡기면 어때? 하고 제의한다면 둘 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것이다. 말 그대로 베이스는 그 세 명에게 있어 기본이었고 구심점이었다.

"…그냥, 우리는 부서진 걸지도 몰라."

민준이 테이블 위에 한숨을 흩뿌렸다. 그 숨을 들이마시듯이 시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 저번엔 정호한테 코드 알려 달라고 졸라 놓고."

말을 잘못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민준의 머릿속을 스쳤다. 정호가 살아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시아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시아는 고개만 약간 돌리고 있을 뿐, 슬픔을 표현하는 어떤 몸짓도 없었다. 단지 아쉬움만이 그 자그마한 손에서 느껴졌다.

"그 때랑… 다르지…"

시아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본인도 확신을 가지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정말로 필요한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서 갑작스레 알려달라고 한 걸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어서 물어봤던 거 아냐?"

아무 말도 않고 시아는 뜨거운 모카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초콜릿 시럽과 생크림이 들어간 커피를 삼킨다. 씁쓸달콤한 맛이 입 안에 퍼지지만 그것을 베이스의 소리와 비슷하게 느꼈다.

'정신이 나갔나 봐,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그렇다고 이럴 때 베이스를 연주하고 싶진 않아."

"글쎄.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단 그게 낫잖아."

정호의 한 마디에 시아는 멈췄다. 머릿속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베이스를 연주하고, 우리의 그 노래를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끔찍하다. 상상했을 뿐인데, 참아 왔던 슬픔이 화산처럼 요동치는 것 같다.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다시 모카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참아야 해서 초콜릿 시럽이 들어간 커피와 함께 슬픔을 마셔버렸다. 뭔가 할 말이 없다. 민준의 말은 사실이었고, 베이스를 연주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한 것도 시아 본인이었다. 단지 정호가 죽은 후에 자신이 베이스를 연주하면,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할 거 같아서 그래."

생각이 입으로 나와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시아는 울컥했다. 말로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톡 떨어진다. 커피 컵을 잡는다. 힘껏 잡는다. 그러나 한 번 나오기 시작한 것은 흐르는 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참을 수 없었다. 민준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이

"잊지 말아야지."

"어?"

"잊지 말라고 하잖아. 날, 널 잊게 내버려두지 말라고."

시아가 커피에서 손을 뗐다. 투명한 눈물이 흘러나오는 맑은 눈으로 정면으로 민준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민준은 정호가 된 기분으로 시아를 바래다 주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눈물을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쏟아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등을 두드려 위로해 주었다. 겨우 힘을 내서, 울음을 그쳤을 때즘, 내일 보자고 말을 던졌고, 시아의 모습이 문 뒤로 사라지자 민준도 결국 왈칵 눈물이 흘렀다.



아침은 너무나 밝았다. 그러나 아직도 장례식장에는 여럿이서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이어폰을 뽑고 민준은 교문을 들어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하나의 추모곡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나뭇잎 사이로 베이스 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금 교실로 가지 않으면 지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준은 그 곳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투른 솜씨다. 코드 잡는 법만 겨우겨우 아는 것 같다. 어쩌면. 어쩌면.








그냥 머리아픈 느낌 들 때마다 짬짬이 쓴거라 정말 괴랄하게 써졌습니다.......
시점도 막 왔다갔다 하고 정신이 없고 죽을라 그러고 앞뒤 안 맞고 모순적이고 애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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