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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넷

다섯시가 되어도 오지 않는건 변함이 없었다.

나는 1층에서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1층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었는데 편의점의 유리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키가 조그만 여중생처럼 보이는 애들 두명이 점장처럼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혼이 나고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담배를 사려고 하다가 혼나는 모습이었다.
한 명은 정말 잘 놀 것 같이 생겼고, 한 명은 얼굴이 잘 안보였는데 뿔태안경을 쓰고 키가 매우 작았다.
설마설마 했다.
점장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살짝 들렸는데 벌써부터 중학생들이 어쩌고 하는 걸보니 정말 담배나 술을 사려다가 걸린게 틀림 없었다.
그당시 '나'의 환상 속에 살고있는 이년이 그런 짓을 할거라고 나는 믿지 않았다.
혹시나 편의점에 들어있는 클리블랜드 야구잠바를 입은 년이 나의 그년일까봐서, 혹시나 나오다가 나와 마주치면 창피 할 것 같아서,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매표소로 올라왔다.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나 바람맞는건 아닐까?
내가 낚인 것일까?
처음 부터 뭔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더니 썩은 호박이었나?
불의의 사고가 난 것일까?
다른놈이 난줄알고 같이 영화를 보고있는건가?(진짜 이런생각도 했다)
도서관이라더니 자고있는건가?
내가 1분늦었는데 설마 1분 안기다리고 가버린건가?

아주 똥줄이 타고있는데
5시 10분경에 엘리베이터에서 키 작은 정말 작은 키가 155인 여자사람이 내렸다.

'오 왔군'

맞다.
그년이 도착한 것이다.
다행히 편의점에서 담배사다 혼난년은 아니었다.
옷차림은 대걸레같은 털이 잔뜩 달린 뭔가 더러워 보이는 하얀 자켓을 입고, 엄청 긴 목도리를 둘둘둘둘둘둘둘 두르고있었고,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무릎이 늘어난 아디다스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는 것이다.
상의는 봐줄만 했으나 바지가 으악.
으악.
성의 없다.
바지 저거 내가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 입는건데.
나란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나보다.
나는 쓰레기.

어쨋든 지금 생각하니까 이정도였지, 그 당시에는 너무 기뻐서 최악의 츄리닝 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는 5시 30분에 시작하는 세인트클라우드 표를 사고 7000원짜리 패밀리 세트 팝콘을 주문했다.
중간크기의 카라멜팝콘과 작은크기의 음료수 두잔을 들고 10관으로 향했다.

영화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사람이 진짜 다 합쳐서 10명도 안된다.
어쩔 수 없이 앉아서 보기로 했다.
그냥 뒷자리 달라고 할걸 생각하다가 어차피 사람도 없길레 바로 맨 뒷자리로 갔다.

영화는 최악이었다.

어차피 망한 영화 그냥 다 말해버려야겠다.
동생이랑 존나 잘지내는 형이있다.
형과 동생은 요트를 진짜 미친 개 잘탄다.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로 형은 살고 동생은 죽었다.
그런데 형이 죽었다 살아나면서 귀신을 보는 능력같은게 생긴거 같다.
형은 동생을 잃은 슬픔에 요트 다 때려치고 묘지에서 일한다.
그래서 하늘로 안올라간 동생이랑 매일 저녁 대포소리가 울릴 때 숲속에서 야구 연습을 한다.
그런데 어느날 요트를 진짜 미친 개 잘타는 여자사람이 나타난다.
둘이서 묘지에서 막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여자도 귀신이었다.
그런데 아직 죽은상태가 아니고 요트타다가 배가 박살나서 반쯤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걸 남자가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릅쓰고 구하러 간다.
구하러 갔을 때 하늘로 올라간 동생이 별똥별을 떨어뜨린 것 같다.
그래서 별똥별 있는 곳으로 갔더니 그 여자가 반 죽어있었다.
구했다.
끝.

정말 재미없었고, 별똥별도 맘에 안들고 스토리도 맘에 안들고 미적지근하고 키스신도 더럽게 짧고 배드신은 없다고 보는게 옳은 재미 없는 멜로영화였다.
존나 로멘틱한 장면에서 고백을 빵 터뜨리려고 했는데 그나마 그런 장면도 없고 아 짜증났다.
그렇게 영화가 끝났다.
내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년이 내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지 저녁은 집에서 먹겠단다.
나는 이 때 부터 망함의 기운을 느꼈다.
빨리 고백해야 하는데.....

집에 가는 도중에는 생뚱맞게 서로의 집안 이야기를 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께서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싫어하셔서 일나가시는데 그 일나가시는 주차장이 니네 학원 주차장임."

"우와, 나는 친척오빠가 있고 친척언니가 있는데 둘다 병신이라 어쩌구 저쩌구 나는 외동에다가 내가 우리집 최강 엘리트여서 내가 존나 사랑받음."

뭐 이런류의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아직 알기에는 이른 대화를 나누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

여기에서 내가 좀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데, 춥다고 뭐라했는데도 내가 아무것도 벗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내 폴로 조끼패딩은 패딩도 아니다.
안에 오리털이 들어있다면 따뜻하기라도 했겠지만, 안에는 그냥 솜뭉치만 들어있다.
시발 폴로.
거품 폴로.
개같은 폴로.
그래서 벗어주지 않았다고 하면 변명이겠지만, 벗어서 입혀주기도 참 거시기한 조끼였고, 입혀도 별로 안따뜻할 것 같아서 그냥 가게된 것이다.
그리고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나는 고백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더럽게 많았다.
갑자기 이혁주 전 여친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귀에 속삭여 주면 좋아라함."

오예.
버스 타기 직전에 그래서 나는 병신같이 귀에다가 속삭이면서 고백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비밀이다.
쪽팔리니까.

버스에 그년이 탔다.
창문으로 나를 쳐다봤다(=꼬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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